픽셀화된 낫과 망치 로고 소개, 디자이너의 말
이미지를 편집하는 프로그램 포토샵에서는 픽셀 유동화(Liquify)란 기능이 존재한다. 이 기능은 고정된 이미지 구조를 해체하고, 고유의 구도를 유동적으로 변형하여 원하는 형태로 이미지를 변환할 수 있다. 이는 현대 디지털 환경에서의 이미지가 정지된 완전성보다는 끊임없는 재구성과 재맥락화의 가능성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과 복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픽셀화(pixellation)는 단순한 시각적 결함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기술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전환을 설명하는 중요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그러나 과한 픽셀의 유동은 흔히 ‘픽셀이 깨진’, ‘저해상도’의 이미지가 된다. 오늘날의 디지털 이미지는 높은 해상도와 완전성을 이상으로 삼지만, 대중적 유통 과정을 통해 빈번히 복제되고 압축되며 점차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로 퇴락한다. 빈곤한 이미지는 기술 복제 과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으며, 원본과의 동일성을 상실한 채 새로운 의미를 가진 디지털 산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이미지는 단순히 질적 저하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재맥락화되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과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생산해내는 역동성을 지닌다. 이러한 픽셀화된 디지털 이미지의 구조적 특성은 시간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한 객체로서의 하나의 픽셀은 규격화된 구조 속에 고정된 듯 보이지만, 동시에 무한히 재배치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특정 타임라인의 시점들이 고정되지 않고 이동 가능하다는 사실과 연결되며, 시간을 단선적이고 순환적으로 이해하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나 픽셀, 즉 개별적 시점 그 자체는 무시간적인 성격을 지닌다. 픽셀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본질적 한계를 갖지만, 그 조합을 통해 새로운 시간적 위치를 창출한다. 디지털 시대에 버려진, 파편화된, 개별된 픽셀은 파국도, 낭만도 아니다. 픽셀이 모이고 움직이며 불온전한 이미지와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는 온갖 오류와 작동하지 못하는 로딩 시간을 비롯하여 침체된 시간이 존재할 것이다.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이 아마 우리의 몫으로 여겨야 될 것이다.
이러한 빈곤한 이미지가 하나의 파국적 표상으로 보이는 동시에 낭만적 이미지로 소비되는 가운데 놓여있는 현재, 냉전의 서슬 퍼런 상징이었던 낫과 망치는 오늘날 빈곤한 이미지로 전환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낡고 부서진 픽셀화된 낫과 망치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낭만적 도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재맥락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매개로 기능하길 바란다. 기술 복제의 흔적을 드러내는 빈곤한 이미지는 오히려 진부한 완전성과 폐쇄성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픽셀화된 낫망, 맑스커뮤날레 사무국장의 글
서슬퍼런 냉전의 시대, 낫과 망치는 공포스런 전쟁과 반공을 국시로 한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며 내면화된 레드콤플렉스를 마음 깊은 곳에서 건드리는 표식이었다. 허나 오늘날의 낫과 망치는 낡은 것, 비효율적인 것, 혹은 이미 멸망한 것을 지시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
많은 맑스주의자들이 낫과 망치를 상징으로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과거의 20세기 사회주의 실험을 의도적으로 연상시키지 않으려 했는데 이조차도 마음의 냉전을 만드려는 것이 아닌가?
'픽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못 귀엽게 들리기까지 하는 '낫망'을 스티커로 만들어 아무렇지 않게 이곳 저곳에 붙이는 것을, 우리는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