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비판”(Crisis & Critique)
위기의 시대이다. 포퓰리즘과 금권정치가 횡행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역사적인 축적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전략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벼랑 끝으로 내몰며 전례 없는 사회적‧정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구조는 주거, 육아, 교육, 보건, 돌봄의 모든 사회적 재생산 영역을 위기로 내몰았다. 성장과 이윤추구의 눈먼 신을 숭배하는 자본주의는 화석연료를 태우며 지구행성의 생태적 질서를 돌이킬 수 없으리만치 파괴시켰고 종국에는 기후위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상상하기보다는 이러한 위기를 통해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자본과 그에 결탁한 정치세력의 공세를 방어하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위기의 비판을 통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인가 아니면 위기를 모면하려는 자기보호를 통해 비참과 절망의 나날을 연장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물음에 직면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숱한 위기의 단편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명료하게 인식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총체성을 분석하는 과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2023년 맑스코뮤날레의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는 페스티벌의 표어로서 “위기와 비판”을 채택한다. 대공황 이후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의 운명과 파시즘의 등장을 통해 민주주의의 붕괴의 상황을 지켜보며 유럽의 명민한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발터 벤야민은 『위기와 비판』이란 제호의 잡지를 발간하려 하였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반복된 역사적 위기 속에서 위기의 현실을 에워싼 혼란을 가로지르며 비판을 재가공하려 했던 그의 기획이 오늘날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통감한다. 맑스코뮤날레는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해방적이면서 비판적 지식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함께한다. 위기를 예감하지만 그것을 심리적‧도덕적 충격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비판의 빈곤을 마르크스주의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